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회재(晦齋) 이언적(李彦迪)의 대표작인 <임거십오영(林居十五詠)>은 이언
적이 자옥산(紫玉山) 아래 독락당(獨樂堂)에 은거하던 1535년 제작한 작품으
로, 15수 연작으로 되어 있다. 이언적은 주자(朱子)가 서재에 머물면서 철학,
윤리, 역사 등을 노래한 <재거감흥(齋居感興)>을 변용하되, 숲속에서 은자와
학자, 충신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 산림에 물러나 사는 학자의 삶을 노래
하는 전형을 만들었다.
7년이 지난 1560년 이황(李滉)은 이 시에 차운한 작품을 남겼는데, 이언적
의 맑은 삶을 대체로 긍정하면서도, 은자나 충신보다 학자의 이미지에 집중
하였다. 특히 ‘임거’에서 수양의 공부를 하는 방식, 임금에 대한 태도 등에
대해 생각을 달리하면서 이언적의 지향을 우회적으로 비판하였다. 그리고 5
년 후 다시 <산거사시음(山居四時吟)>을 지어 도산(陶山)에서 살아가는 학자
의 노래를 새로 제작하였다.
<임거십오영>은 이황 이후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. 신지제(申之悌), 권필
(權韠), 이희조(李喜朝), 채팽윤(蔡彭胤), 박태무(朴泰茂), 조의양(趙宜陽), 정
충필(鄭忠弼), 이야순(李野淳), 이재영(李在永) 등이 이언적의 작품에 직접
차운하기도 하고 이 작품에 차운한 이황의 시에 차운하기도 하였으며 운자
를 따르지 않고 제목만 취한 작품도 나타났다. 권필이 <임거십오영>을 받아
들여 자신의 삶을 형상화하였고 신지제가 이를 차운하여 비슷한 내용을 담
았다. 이언적이 붙인 소제목을 따르면서도 운자는 같은 것을 쓰지 않았는데,
한편으로 이언적의 삶을, 다른 한편으로 이황의 삶을 지향하면서도 시인으
로서의 맑고 고운 흥취를 담아내어 ‘임거’를 담은 시의 수준을 높였다. 그 후
이희조, 채팽윤, 박태무, 이야순 등은 이황의 시에 차운하면서 이황이 보여
준 ‘임거’의 뜻을 추종하였다. 이에 비해 정충필과 이재영, 그리고 근대의 문
인들은 이언적의 시에 직접 차운하면서 수양에 힘쓰는 이언적의 삶을 중심
으로 하되 이황의 뜻을 절충하였다. 조선 후기 학자의 ‘임거’를 노래하는 전
통이 이러하였다.